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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느헤미야 2장)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왕께서 또 나에게 물으셨다. 나는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서, (4) 밤에 수행원을 몇 명 데리고 나섰다.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예루살렘에서 일하도록 하신 것을, 나는 그 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아니하였다. 나에게 짐승이라고는, 내가 탄 것밖에 없었다. 밤에 나는 ‘골짜기 문’을 나섰다. ‘용 샘’을 지나 ‘거름 문’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 성벽을 살펴보니, 성벽은 다 허물어지고, 문들도 모두 불에 탄 채로 버려져 있었다. ‘샘 문’과 ‘왕의 연못’에 이르렀을 때에는, 내가 탄 짐승이 더 나아갈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 날 밤에 나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성벽을 둘러보고, 다시 ‘골짜기 문’을 지나 되돌아왔다. (12-15) 이렇게 돌아보고 난 다음에, 나는 비로소 관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는 지금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페허가 되고, 성문들은 불탔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읍시다. 남에게 이런 수모를 받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17)

느헤미야 2장

황폐화된 예루살렘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안색이 좋지않습니다. 이를 본 왕은 묻습니다. 무슨 일인가? 바라는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먼저 기도를 드리는 느헤미아. 하나님 본위의 삶을 사는 모습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묻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이 이 곳에 온 목적을 알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왕과의 친분과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느헤미아는 조용히 상황을 먼저 살폈습니다. 남에 전해들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문제되는 곳에 가서 원인을 파악합니다.

느헤미아는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면서 성벽을 다시 쌓으려고 합니다. 불에 탄 성문을 다시 달려고 합니다. 예루살렘을 왜 ‘고립’시키려고 했을까요? 왜 ‘분리’시키려고 했을까요? 분명 군사적인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구별’을 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나는 구별된 삶을 살고 있는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식을 나도 똑같이 따라하고 있는가? 오늘 스스로를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