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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물을 증발시켜서 끌어올리시고, 그것으로 빗방울을 만드시며



물을 증발시켜서 끌어올리시고, 그것으로 빗방울을 만드시며 (36:27), 구름 속에 싸 두었다가 뭇 사람에게 비로 내려 주십니다 (36:28).

눈에게 명하시면 땅에 눈이 내리고, 소나기에 명하시면 땅이 소나기로 젖습니다 (37:6). 눈이나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봅니다 (37:7).


욥기 36-37

오랜 지면을 활용한 엘리후의 말은 끝을 맺습니다. 여전히 자신을 지식이 충만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엘리후는 고난에 빠진 욥을 가르치려 듭니다. 저역시 그동안 어려움에 빠진 친구들과 같이 울어주기는 커녕 그들 고난의 원인을 궁구하고 그들에게 방향만 지시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깜짝깜짝 놀라는 사실은 우리가 최근에야 밝혀진 ‘과학적 사실’들은 오래전에 이미 ‘상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욥기36:27-28절의 비의 형성 과정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비의 증발, 응결, 강수의 세 과정은 16,17세기에 비로소 확정이 된 이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욥기가 씌여진 기원전 10세기에 이는 이미 ‘상식’이었습니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로 강수의 정도를 왕의 과실을 묻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비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자연에 하나님은 ‘묻어나’ 계십니다. 자연 숭배사상이 아니라 한 송이 꽃이 피어나는 것만 봐도 하나님의 섭리가 느껴집니다. 꾸미지 않은 백합화가 솔로몬의 화려한 옷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마6:28-29).

폭설이 내리고 폭우가 쏟아지면 사람들의 삶은 순간 정지됩니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눈을 보고 비를 응시하며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봅니다. 우리 인간의 한계를 잠시나마 느끼고 하나님을 혹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자연이 아름답고 위대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사실 이 자연을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아름답고 위대하신 것이지요.

C.S. 루이스는 “Is Theology Poetry​”라는 17페이지의 짧은 글을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I believe in Christianity as I believe that the sun has risen: not only because I see it, but because by it I see everything else.”

“내가 그리스도교를 믿는 것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는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떠오른 태양을 통해 다른 모든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꽃 한송이에서 하나님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