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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예수님을 믿고 나서 저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걱정 근심을 끌어않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유학을 와서 2년 석사만 버티자는 심산으로 하루하루 엑셀excel로 생활비를 적어갔습니다. $000-$0=$00식으로 남은 잔고를 표시했고 이대로 살면 2년이 지나는 시점에는 잔고가 얼마가 남을 것이라는 예측까지 하면서 살았습니다. 가난한 유학생이 비싼 유학생활을 버티려는 안간힘이었습니다. 여기서 무너지고 쓰러지면 마지막이고, 도와줄 이 하나 없는 현실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지요. 돌아보면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같이 사는 아내는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나서 걱정 근심의 엑셀파일을 모두 버렸습니다. 하루하루를 주어진 은혜로 살게되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옛 자아가 남아있어서 걱정 근심이 스물스물 살아 올라옵니다. 물론 걱정 근심이 없는 곳은 천국이겠지만, 필요없는 걱정 근심을 할 때면 옛 자아의 습성에 한 숨이 터져 나옵니다.

여전히 연구에 대한 압박이 있습니다. 연구에 탁월한 성과를 내려면 자는 시간도 줄이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아껴야 하지만 저는 그럴 마음은 없습니다. 여전히 강의에 대한 부담이 있습니다. 누구를 가르친다는 일은.... 그것도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매 수업마다 강의실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과 빨라지는 심장 소리만 들어도 쉽지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학교에 있는 사람에게 방학은 오히려 고뇌가 커지는 시간입니다. 시간이 많으면 잡 생각도 많아지기도 하고 필요없는 상상의 소설의 써가면서 불안감을 키웁니다.

그래도 저는 압니다.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게 살아야함을. 관성처럼 살아 나오는 걱정 근심의 옛 자아를 누르고. 뽑아도 뽑아도 또 자라나는 죄성의 잡초를 제거하고. 스프링처럼 다시 튕겨져 나오는 못된 게으름의 습관을 자르면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면서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겠습니다.

열심히. 오늘이 마지막인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