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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여 주시는 교훈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여 주시는 교훈을 받아들이고, 그의 말씀을 네 마음에 깊이 간직하여라 (22절). 전능하신 분에게로 겸손하게 돌아가면, 너는 다시 회복될 것이다. 온갖 불의한 것을 네 집 안에서 내버려라 (23절). 네가 그분에게 기도를 드리면 들어주실 것이며, 너는 서원한 것을 다 이룰 것이다 (27절). 그분은 죄 없는 사람을 구원하신다. 너도 깨끗하게 되면 그분께서 구해주실 것이다 (30절).

욥기22장

욥의 항변에 데만사람 엘리바스의 변이다. 구구절절 옳다. 언뜻보면 시편에 나오는 다윗의 시같기도 하고 솔로몬의 잠언과도 같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나도 여러번 “수박 겉핥기로” 욥기를 읽어보면서 왜 욥만 선한자고 나머지 세 친구들은 왜 무시당하는가 소리없는 불만을 품어왔다.

내가 본 엘리바스의 결정적인 잘못은:
1. 친구(이웃)의 아픔에 같이 울어줄 “사랑”보다는 친구의 아픔이 어디서 왔는가를 궁구하며 그를 교정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재산을 다 잃고 자식마저 잃고 아내도 등을 돌린 막다른 골목에 있는 친구에게 ‘네 죄악이 이런 비극을 불렀다’고 윽박지르고 있다. 아시분들은 아시겠지만 욥의 비극의 시작은 하나님의 “허락”하에 사탄의 시험이었다.
2. 또한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IF ~ THEN. 만약 네가 XX 하면, 하나님은 XX을 해주실 것이다. 과연 인생이 그러한가? 과연 하나님은 우리의 도깨비 방망이요 “지니”인가? 우리 모두 경험적으로 그렇지 않음을 안다. 물론 인생에 어려움이 찾아오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면 자신의 죄악을 하나님께 묻고 찾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하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에는 모른다. 우리의 고난이 하나님의 침묵이 어쩌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 오늘 욥기를 통해서 어려움을 당한 이웃에 긍휼한 마음을 갖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 납작 업드려서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대하며 기다릴 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